전에 상담 다닐 때, 엄마와 나눈 대화에 대해 얘기하다 느닷없이 운 적이 있었다. 상담 선생님이 ‘지금 우시는 건 왜 우는 거예요?’ 물었을 때 나도 진짜 모르겠다고, 나는 화를 내고 싶은데 나도 남들처럼 내가 지금 화가 난다고 ‘말’로 하고 싶은데 나는 그럴 때 눈물이 먼저 솟아서 정말 억울하다고 내 분노를 강하게 전달할 수 없다고.. 얘기했더니 상담 선생님이 굉장한 걸 깨달았다는 듯 반응했었다. 그렇구나! 저는 그동안 선영님 상담하면서 늘 그게 궁금했는데 못 물어보고 있었거든요. 선영님은 화가 날 때 우는 사람이구나. 화가 난다는 뜻이군요.

그 기억이 오늘 문득 떠올랐다. 나는 왜 남들과 같은 형태로 분노할 수 없나. 목소리를 높이고 SNS 에서 더욱 더 소리치는 걸로 이 무거운 마음의 일부라도 흘려보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렇게 하기 힘든 데는 부채 의식과 나 자신의 한계가 고루 섞여 있다. 모두가 자신의 소수자성을, 소외 받았던 고향을, 이어받은 소명을 밝힐 때 나는 우리 부모님이 두 분 다 경상도 출신인 걸 생각한다. 몇몇 과격한 사람들이 2찍은 전부 나가 죽으라고 말할 때 나는 우리 이모와 사촌동생이 국힘 당원인 걸 떠올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재판을 변호했던 변호인단 무리에 외가 쪽 친척이 있었던 걸 떠올리고, 내가 그 모든 일에 화를 낼 생각조차 않은 것도 떠올린다. 회사 사람들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커피 타임 주제로는 계엄령 그 자체보다 그로 인한 주가 하락과 환율 상승, 이럴 때 사야 할 도지코인이 훨씬 중요하게 다뤄지고 나는 그 안에서 튈 용기가 없다. 나는⋯ 쉽게 타협하고, 내가 속한 커뮤니티에서 얄팍하게나마 안정감을 느끼고 싶고, 분노를 올바르게 표출할 자신도 없다. 나는 아마도 이 시국에 마이크를 잡을 만한 사람은 아니다. 나도 어떤 공적 발화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엘리트 의식은 지금 상황에선 더없이 수치스러운 것이다.

그러니 거창한 생각 말고 내가 해야 할 걸 하자. 이제 와서 회사 노조가 ‘우리도 민주노총 산하예요’ 말하는 걸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나도 무슨 대의와 함께하고 있다고 믿는 건, 진짜로 그 대의를 최전선에서 지켜가는 사람들에게 예의가 아닐 테다. 정작 회사 노조가 설립될 땐 정치색 묻는다고 민주노총 산하로 들어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퀴어와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도 지금은 접어두자. 그저 지적 욕구가 있었을 뿐 행동하지 않는 긍지에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정확히 내가 행동하는 만큼만 당당해질 수 있을 테니⋯.

우선은 최대한 일상을 지켜야 한다. 일에 구멍이 안 나야 하고, 토요일에 시위 나가보니까 체력이 정말 많이 필요하더라. 그러니 운동도 틈틈이 할 수 있으면 좋고. 방석과 핫팩도 미리 사놓아야 하지 싶고. 남들 응원봉 흔드는 거 너무 부럽던데 나도 당근에서 샤팅스타를 하나 살까. 이사하기 전에 책도 많이 팔아야 하고, 안 쓰는 물건 모아다 버리기도 해야 하고, 놀랍게도 2025년이 다가오고 있어서 다이어리도 또 하나 봐 놓은 게 있다. 나를 최대한 건강하게 지키고⋯ 해야 할 일을 해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