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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Oct 14, 2024

결국은 써야 할 거 같지. SNS 인생 돌아보기 같은 글을…

트위터를 비활성화한지 이제 일주일 조금 넘게 지났다. 왜 비활성화하게 되었냐면 내 트윗 하나가 난장판을 일으켰기 때문인데. 락페 일정 때문에 금요일부터 부산에 있었고, 당시 카페에서 다소 심심한 독서를 하며 트위터 새로고침을 하던 찰나 내 타임라인에 들어온 트윗이 있었다. A와 B 두 명이 서로 인용을 주고받으며 싸우고 있었는데 A는 닉네임 옆에 장미 우산 이모지를 달고 있는, 그러니까 성노동자들에게 연대하는 입장이었고 B는 아마도 그걸 가당찮게 보는 입장이었던 거 같다. A는 ‘너는 그럼 위안부 피해자 분들에게도 연대하지 않느냐’고 말을 했고 B는 ‘성매매하는 여자들과 위안부 피해자들이 같냐, 전자는 자발적이고 후자는 비자발적이었다’고 반박했으며 A는 ‘그럼 자발적이었던 위안부 피해자들은?’ 하고 재반박을 한 상태였다. 내 타임라인에 들어온 게 그 재반박 트윗이었다. 나는 그 트윗을 인용해 ‘실제로 위안부 피해자들 중에선 일본 군인과 결혼했던 사례도 있고 그 당시엔 자기 스스로를 애국자로, 군인을 전쟁이라는 상황에서의 연대자로 생각했던 사례도 있었다. 우리 입맛에 맞는 피해자상만 볼 건 아닌 거 같다’고 썼다.

그리고 난리가 났다. 나는 정말로 그렇게까지 난리가 날 줄은 몰랐다. ‘이건 또 뭔 개소리야’ 같은 인용이 들어올 건 예상하고 있었으나 내가 예상한 건 끽해야 n < 10 이었다. 그런데 내 트윗은 원래 이 싸움의 주체였던 두 사람의 트윗보다 훨씬 더 많이 리트윗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3천이 넘어 있었다) 인용과 멘션과 DM이 아주 터져나갔다. 멘션 중에선 내가 사는 지역을 특정해서 욕하는 것도 있었고 DM은 정말로 나가 죽으라는 내용이 왔다. 십 년간 트위터를 하면서 처음 겪어보는 일이었다.

논란이 된 그 트윗뿐만 아니라 내가 예전에 썼던 트윗들, 책 읽고 공연 봤던 트윗에도 모조리 인용이 붙어 ‘너 따위 사고를 하는 년이 인간 실존을 다룬 햄릿을 봐서 뭐하냐’ 하는 말이 나온 거까지 보고 트위터를 비활성화했다. 나와 대화를 주고받았던 트친들의 트윗까지 조회수가 로켓처럼 튀어있는 것 또한 두려움에 한몫했다. 혼자 부산에서 한참을 생각해 봤다. 그래. 내가 트윗을 잘못 썼지. 나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이었다는 소리를 하려던 게 아니라 얼마나 자발적이었는지 점수 매겨서 피해자 여부를 판가름하는 게 의미없다는 말을 하려던 거였지만, 140자 트윗으로 그게 다 전달되진 않았겠지. 다 전달됐어도 사람들에게 인기 있을 만한 주장은 아니었고. 애초에 그렇게 학술적인 언어로 둘둘 무장해서 쓰지도 않았지. 박유하 교수가 <제국의 위안부>를 쓰고 나눔의집 재단으로부터 명예훼손 고소당했던 게 무죄 판정 나기까지 거진 10년이 걸렸는데 하물며 내 트윗은 엄밀하지도 않았으니까.

어쩌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응했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내 트윗이 곡해돼서 널리널리 퍼지고 있다는 걸 인지했을 때, 알림을 뮤트할 게 아니라 ‘이보세요 그 말이 아니구요’를 해야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태를 보고 내게 남은 감상은 ‘피곤해서 돌아버릴 거 같다’였다. 싸우기 너무 싫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싶다. 요근래는 갈등을 만드는 모든 것이 질린다. 페미니즘, 퀴어, 컨텐츠 비판. 노조, 블라인드, 연봉협상. 정말 다 질린다. 뭐 대단한 투쟁을 하고 살았다고 이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는데 딱 일 년만 모든 정치적 판단과 유리되어 살고 싶다. 다들 어떻게 이 피곤함을 극복해내는지 모르겠다.

더 이상 발화하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한때는 어떤 가교 역할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회사 일에서. 가령 누가 SNS에 ‘요즘 웹툰 볼 거 없다 옛날 같지 않다’는 말을 쓰면, 그 사람이 말하는 옛날과 지금의 웹툰 산업이 어떻게 다른지 얕은 지식으로나마 말 한 마디 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다.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매일 보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리라고.. 하지만 지금은 퇴근하고 트위터를 켰는데 #네이버웹툰_불매 해시태그를 발견하면 누가 날 벽에 머리 박아 기절시켜 줬으면 좋겠다. 무슨 문제인지 알고 싶지 않다. 알고 나면 나는 독자로서의 내 입장과 실무자로서의 내 입장을 명확하게 분리하지도 못할 텐데. 이 괴리는 너무 오랫동안 쌓인 나머지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다. 잔뜩 꼬여 비아냥거리는 말이 제 안에 A4 한 장 분량은 살아 숨쉬는 거 같아요. 결국 아무데도 뱉진 못할 거면서..

SNS를 끄니까 세상이 이렇게 조용하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아직 생각해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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