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없음
오랜만에 한 친구를 만났다.
TRPG 커뮤니티에서 처음 알게 됐고, 알게 된 그날에 신나는 오타쿠 토크를 했고 (일단 내 입에서 농놀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그 저변과 수면 아래를 한방에 이해했음) 이런저런 주제에 관심이 많은 친구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작년 퀴어 퍼레이드에서 우연히 마주친 걸 계기로 어떤 믿음이 생겼다. 아. 믿을 만한 사람! 물론 퀴어도 한 집단으로 균일하게 묶이진 않지만, 오타쿠-퀴어-페미니스트 라는 삼원색에서 정중앙을 함께 헤엄칠 동지를 만난 자체가 반가웠다. 작년에 성남시를 배경으로 한 게임북을 같이 만들자는 것도 이 친구의 제안이었고.
지난주쯤 이 친구가 내게 비평 기고를 할 생각이 없는지 물었다. 기술 문화에 대해 얘기하는 독립출판 잡지에 본인이 발을 걸치고 있는데 UI/UX 에 대해 글을 써 줄 사람을 찾고 있다고 했다. 쉽게 yes 를 할 만한 제안은 아니라 일단 만나서 얘기하자 했고 그렇게 약속이 잡혔다.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이 으레 그렇듯 본론 이야기와 근황 이야기, 요즈음의 고민거리 등등을 함께 이야기하게 됐다.
친구가 무슨 말끝에 그랬다. 자기는 여성들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가 더 궁금하다고. 제발 화장실 얘기 좀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그 말에 거의 울 뻔했다. 맞아맞아. 도대체 화장실 얘기 왜 그렇게 중요한 거야? 친구는 하루에 많게는 10시간 이상을 트위터를 들여다 보고 나 또한 트위터에 거의 내 뇌의 일부를 맡겨 둔 상태인데, 요즘 화장실이 그렇게 뜨거운 화제다. 성공회대의 ‘모두의 화장실’이 아주 거대한 불꽃을 쏘아 올렸다. 자기 바이오에 페미니스트든 트랜스젠더든 뭐 하나라도 명시해 둔 사람은 하루종일 화장실 얘기만 하고 있는 거 같다. 수면 아래를 깊이 들여다 보지 않으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우리 대화의 메인 키워드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법정 페미니스트. 이건 우리가 즉석으로 만들어 낸 용어다. 이 법정 페미니스트는 윤리적으로 굉장히 각성된 사람이다. 본인이 윤리적이라는 것이 정체성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며, 그 윤리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 활동도 공부도 열심히 한다. 더 윤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사람은 자기 마음 속에 작은 법정을 하나 품고 있어 그 안에서 매번 판결을 내린다. A라는 사안은 찬성할 만하다. 왜냐면 이러이러한 근거가 있으니까. B라는 사안은 결단코 반대해야 한다. 왜냐면 이러이러한 주장이 있으니까. C는 “안고 가야” 하고 (친구는 이 ‘안고 간다’는 표현을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난다고 했다) D는 일고할 가치도 없는 미친 소리다. 이 사람은 아주 성실하고, 페미니즘 활동에 적극적으로 앞장서며, 대부분의 경우 선봉장의 역할을 한다.
두 번째, 팬덤 정치. 첫 번째 키워드와 두 번째 키워드는 사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적어도 우리한테는 그랬다. 팬덤 정치를 먼저 언급한 건 나였는데, 최근 트위터에서 보고 있는 CP 팬덤 개싸움이 그 원인이었다. 정말 웃기고도 흥미로운 점은 내가 농놀을 하기 전에도 이 분야에 무관하거나 관심이 아예 없는 사람이 아니었다는 거다. 나는 작게 잡아도 십오년을 오타쿠로 살았고 학술적인 관점의 서브컬처 문화에도 관심이 많았다. 김효진 교수님의 세미나도 들은 적이 있고 대중 서적 중에서 찿아볼 만한 건 한 번씩 읽어 봤으며 어쨌건 나도 트위터를 오랜 시간 했다. 그래서 이만하면 알 건 대충 다 안다고 생각했으나, 안전한 물 바깥에서 수면 아래를 관찰하며 흠 저 안에서는 이러이러한 일이 벌어지고 있군요 이건 이렇게도 볼 수 있습니다 라고 이해하는 것과 그 아래로 직접 잠수해서 먹이사슬 한복판에 나 자신을 던져 넣는 건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내가 창작자로서 직접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친구의 표현이 지금 생각해도 인상적이다. 우리는 분명 ‘어떠한 진실’을 봤다. 그 수면 아래서 벌어지는 다이내믹이 있다. (다이내믹이라고밖에 표현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결코 트위터에서 그걸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 오타쿠들이 CP 덕질을 경유해 수행하는 섹슈얼리티가 분명하게 존재하지만 “나 사실 이러이러한 욕망 때문에 얘들을 덕질하는 거 같아” 라는 발화는 좀처럼 집단 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팬덤 간 싸움이 생겼을 때 “근데 쟤네가 하는 말이 사실 맞긴 하잖아” 라는 발화도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누가 그걸 시도는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내가 바이오에 CP 이름을 걸고 사람들과 교류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바이오는 더 이상 나의 기호를 나타내지 않고, 내가 하는 발화는 모두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당 CP 팬덤에 속한 사람의 정치적 발언으로 작용한다. 2차 창작에서 쓰이는 각종 비윤리적 소재가 2차를 음지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 ‘다이내믹’을 공개적으로 언급할 수 없다는 바로 그 지점이 이곳을 음지로 만든다. 친구 역시 오타쿠 문화를 주제로 논문이든 뭐든 써 보고는 싶으나, 현재까지 그 문화를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물 바깥에 있는 사람이거나 수면 아래 개싸움에 진절머리를 내며 빠져나간 사람 뿐이라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고 했다.
법정 페미니스트와 팬덤 정치가 왜 분리되어 있지 않냐면, 이 법정 페미니스트가 페미니즘을 수행하는 방식이 팬덤 정치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를 고민에 빠트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트위터에서 N개의 비공개 계정을 운영한다. 1번 계정으로는 본인과 같은 CP를 덕질하는 팬덤 동지들과 교류하고, 2번 계정은 그 중에서도 자기와 결이 맞는, 보다 개인적인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에게만 팔로우를 걸었다. 3번 계정은 그 안에서도 더 추려진 사람들에게만 팔로우를 걸었다. 그러니까 난 한 사람의 일상을 공개 계정 1개와 비공개 계정 3개로 보고 있는 셈인데. 그거까진 정말 아무 상관없었다. 근데 나를 고민에 빠트린 지점은 이 분이 3번 계정에서 법정 페미니스트로서의 발화를 쏟아낸다는 것이다. 하루종일 화장실 얘기를 하신다. 공용 화장실에서 여성들이 겪는 실존적 위협이 얼마나 큰데 여성의 권리를 빼앗아가냐며.
(이렇게 쓴 것이 내가 그 분의 의견에 반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는 그 주제에 뚜렷한 의견을 갖고 있지 않고, 화장실이 이토록 양측에서 중요한 문제로 다뤄지는 배경에 더 관심이 있다.)
내가 이 얘기를 했더니 친구도 공감이 진하게 어린 얼굴로 비슷한 경험담을 공유해 줬다. 커뮤니티에서 만나게 된 어떤 분이 자신을 아주 친밀하게 대하고 이너 서클에 잔뜩 끼워 주길래 정말 순수하게 감사했는데 알고 보니 그 분이 법정 페미니스트였을 때. 우리가 맞딱트리는 상황은 결이 같다. 상대의 법정에서 내가 YES로 판단된 거다. 퀴어 및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 공개적인 발화를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읽고 뭔가 아는 게 많은 거 같고 생각이 깊어 보이고… 내가 남들 눈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는 걸 나도 안다. 스스로 연출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나는 같이 법정에 서서 의사봉 땅땅땅을 할 생각은 없다. 그 땅땅땅을 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하고 싶은 정치적 발화다.
그 분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다. 단언컨대, 내가 그 분께 먼저 다가가 ‘선생님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으나 이건 이런 면에서 좋지 않은 발언이고 소수자를 고려하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면 그 분은 (내 논리가 납득만 된다면) 받아들일 것이다. 법정 페미니스트는 발전하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그 분들만큼 갓생 사는 사람이 없다. 사회를 위해 아주 적극적으로 발언하신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적극성이, 스스로를 의심치 않는다는 바로 그 면모가, 나와 그 분 사이에 거리를 남겨 둔다.
사실 회사에서도 꽤 중요한 일이 있었는데 오늘 친구와의 대화가 너무 의미 있었어서 쓰는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