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쓸 말이 있어서 온 건 아니고. 블로그를 너무 버려두었나 싶어서 와 봤다. 아마 4분기에는 2~4분기동안 읽었던 책이나 영화 감상 모음집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써도 그 중 대부분은 4분기에 접한 거겠지만.

근래 있었던 일을 정리하면 직장 동료 한 명이 결혼을 해서 결혼식에 다녀왔고, 중학교 때 친구가 무려 새댁이 되어서(…) 집들이를 열어 우리에게 식사 대접을 하겠다기에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벌써 그렇게 나이 먹었니 다소 남다른 감회로 다녀왔고, 지난 여름에 했던 인터뷰의 초안 원고를 받아서 회사에 이 내용으로 인터뷰가 나가도 될지 한 번 더 확인 받는 절차를 진행 중이고, 회사는 판교 오피스를 정리하고 내년에는 정자역 근처로 다시 돌아갈 수도 있다는 발표를 했으며, 팀에는 신규 인력이 두 명 더 들어왔고, 네이버 온스테이지가 서비스를 종료했네.

신규 인력도 YONDER 만들던 팀을 해체시켜서 데려온 거고 (정말 야심차게 출발한 북미 타겟 웹소설 서비스였는데…) 온스테이지 종료도 결국은 수익성 없는 사업을 접는 것의 일환이어서 (그렇게 정리한 서비스가 올해만 해도 여럿이었기 때문에) 밖이 춥다는 게 사실이구나 하고 실감하고 있다. 그리고 내가 웹툰 안에서도 주력 서비스를 만들고 있다는 거에 안심한다. 다행이야. 우리 팀은 공중분해가 되진 않겠군. 거기에 안심해야 하는 게 가끔씩은 비참하다.

코로나 시기에 IT 기업들에 버블이 잔뜩 껴서 모두가 정신 못 차리고 신나게 노를 저을 때 사람들은 너나 할 거 없이 자기가 성장을 하는 거라고 말했다. ‘저는 성장에 관심이 많아요.’ 이 문장을 과장 안 보태고 귀에 피 나도록 들었다. 실력이 있으면 언제든 이직할 수 있는데 뭐하러 한 회사에 계속 머무르냐며 빈정거리던 사람들을 가끔 떠올린다. 실력 같은 소리하네. 똑같이 자본주의 시장에서 팔려나가는 공산품끼리 오만하기도 하지. 그런 잔뜩 꼬인 생각도 했다가 어느 날엔 그냥 다 놓는다. 귀찮고 피곤해. 지쳐. 우리 회사 으르신들 상대하는 것만 해도 벅차.

요근래 책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 저번에 ‘사 놓고 안 읽은 책’ 목록을 한번 정리하기도 했고, 놀랍게도 저 목록과 별개로 이미 내 알라딘 장바구니에는 새 책이 쌓여 있는데다 내년에도 도서전을 가면 또 새로운 책 몇십 권을 쟁여올 게 분명한데 이 이상 밀리면 안 될 것 같아 본격적인 책 클리어를 시작했다. 이걸 독서라고 해야 할지 도장깨기라고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지만. 일단 안 읽은 책의 권수를 줄이는 게 주요 목표여서 빨리 읽을 수 있는 소설 종류부터 시작했다. 가장 최근에 읽은 건 김보영 작가님의 SF 였다. <종의 기원담>을 다 읽고 바로 <다섯 번째 감각>으로 넘어와서 오늘 저녁에 완독했는데, 현재 내 알라딘 장바구니에는 김보영 작가의 모든 출간작이 다 들어가 있다. 조만간 저희 집에 김보영 작가 특집 코너가 개설될 예정입니다. 많관부.

나를 사랑할 수 없을 땐 남이라도 사랑해야 하는 거 같다. 오늘 머릿속에 갑자기 그런 생각이 스쳤다. 한 달에 한 번 월경이 찾아오듯 비슷한 꼴로 나는 왜 2차 창작을 하고 있나 생각한다. 배경음악으로는 god 의 길이 좋겠다. 나는 왜 이 길 위에 서 있나 이게 정말 나의 길인가. 웃기지. 이런 고민 한다고 안 쓸 것도 아니면서. 그럴 때면 매번 장강명 작가님의 말을 떠올린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합니다. 작가님이 강연을 가실 때마다 전하는 말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던 당시에는 꽤 멋있는 멘트라고 생각했다. 오. 작가는 본 투 비 작가. 하지만 2차를 쓰면서 창작의 언저리에서 물장구 참방참방 몇 달 째 해보니 그건 멋있는 말이 아니라 짠한 말이었다. 내가 쓰는 글이 내 마음에 안 들어도, 남들은 나와 비교도 못 하게 잘 쓰고 나는 인터넷 월드에 바이트 공해를 쏟아내는 거 같아도, 어차피 쓸 사람은 쓴다. 그러니까 그냥 쓰세요. 그렇게 들린다.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그런 멘트였던 거 같아.

아무튼. 마음이 복잡할 땐 인터넷에서 멀어져야 한다. 트위터를 끄고 영 포티 감성이 살아있는 블루스카이를 켜거나 그냥 인터넷을 끄고 책을 읽어야 한다. 오늘 카페에서 김보영 작가의 책을 읽으면서 번뜩 스치는 게 그 생각이었다. 내 글을 좋아할 수 없을 땐 남의 글이라도 좋아해야 한다고. 어쩌면 덕질의 본질이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내 글을 좋아할 수 없어서 힘이 들 때 그것은 “내 글”이 아니라 “좋아할 수 없어서”에 방점이 찍히는 감정이다. 무언가를 미워하는 건 너무 힘들다. 그런데 나를 안 미워하긴 더 힘들어서. 그래서 영원히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찾는 건지도 몰라.

돌고 돌아 결국은 외롭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괜찮습니다. 조회수가 찍히면 사람은 그걸로도 행복해지더라구요. 그걸 일찍 익혀서 아주 다행이지.

내일은 블루 자이언트를 보러 갑니다.

가끔 와서 소식 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