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정말 날씨가 너 무 너 무 좋았다. 그런 날씨와 무관하게 월화는 너 무 너 무 우울했다. 이유는 모르겠다. 투두리스트 다 클리어 했고, 집에서 요리도 잔뜩 했고, 자긍심 깎일 일은 아무 것도 없었는데도 새벽 다섯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수도 없었다. 달리기도 도저히 손이 안 갔다. 일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책임감과 성실함 둘 다 하한선을 향해 급강하하는 날들이었다. 지난주부터 조금씩 그랬다.

수요일엔 배구 교실이 있었다. 자타공인 체육 젬병 어쩌다 구기 종목을 도전하게 되었나 얘기하자면 길다. 그리고 얘기 길게 하는 거 민망하니까 넘길래. 배구 교실은 선명하고 뚜렷한 결과를 안겨주었다. 양 팔에 짜잔~ 하고 멍이 들었다. 그리고 약 이틀을 에구구구 하면서 움직였다. 아니 첫날에 한건 엄밀히 따지면 배구도 아냐. 우린 이런 걸 똥개훈련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하지만 고작 그 두 시간의 똥개훈련으로 이틀을 고생했다. 잠깐 화장실이라도 갈라치면 근육이 말을 했다. 그래 나 여깄다. 니가 그저께 뭔갈 하긴 했구나.

토일 주말은 그저 입 헤 벌리고 벚꽃만 봤다. 예쁘다. 와아 예쁘다. 아 행복하네. 그 외엔 아무 생각도 안했다. 생각’해야 할’ 주제는 많지. 면접관 경험에 대한 것도 언젠간 글로 쓸 거고 - 노트에 이미 잔뜩 끄적여 뒀고 - 다음주 글방 글도 써야 되고, 회사 일도 다시 성실하게 해야 되고. 정성을 쏟아야 할 곳은 언제나 많다. 그나마 이렇게 열거할 수 있다는 건 평소에도 공을 들이고 있는 거지. 글로 써두지 않은 틈새로 빠져나가는 건 더 많을 것이다. 멀어져가는 친구에게 연락하기 라던가. 장기적인 계획 세우기 라던가.

하지만 이번 주말은 벚꽃을 봤다. 성장이고 나발이고. 그런 딱딱한 주제를 고민하기엔 날이 너무 좋다. 이 날씨 이 풍경은 고작해야 일주일도 가지 않는다. 벚꽃이 흩날리고 딸기가 맛있고. 테라스에서 맥주를 홀짝홀짝 하면 바람이 불고. 피부 끝에도 행복이 닿는 그런 4월.

사람이 참 줏대가 없다. 멋진 개발자 되기에 잔뜩 골몰해서 책도 읽고 블로그도 만들던 몇 달 전이 무색하게. 지금은 또 아유 커리어는 무슨 난 모르겠다 싶다. 전 술이 좋고 책이 좋고 이거나 끌어안고 살래요. 어제 교보문고 갔을 땐 친구랑 또 물리/수학 코너에서 멈춰섰다. 친구는 또 양자를 붙들고 나는 또 해석학을 붙든다. 헐 재밌겠다 이거 해보고 싶어. 헛소리를 또 지껄인다. 이상하지 분명 작년 언젠가 ‘이제는 수학 미련을 놓아줄 때가 됐다’며 장엄하게 결론 냈었는데. 왜 나는 또 알라딘 장바구니에 수학책을 넣어두고 있는 걸까.

글을 쓰는 나는 언제나 결론을 낸다. 과거의 이 지점에서 시작해 이런저런 생각을 거쳐 저는 여기에 도달했습니다. 여기가 제 종착지입니다 땅땅. 하지만 계속 살아가는 나는 언제나, 글을 쓰는 나에게 배신당한다. 너 임마. 너 분명 A 가 네 결론인 거 같다며. 근데 왜 이제 와서 딴소리해? 그런 논쟁의 연속이다. 생리 기간에 호르몬이 요동치면 결론은 바뀌고, 봄이 와서 날이 좋아지면 결론이 또 바뀌고, 친구 소식을 듣고 나면 결론이 또 바뀐다. 나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나 자신을 쫓아간다.

이제는 그래. ‘역시 난 성장하고 싶은 거 같아’ 이 말도 우습고, ‘그래 역시 난 이쯤에서 만족하고 싶어’ 이 말도 우습다. 그 둘 사이에서 나는 언제나 진자 운동을 한다. 사인 곡선은 1인가요 -1인가요 물으면 이상하잖아. 사인 곡선은 그냥 사인 곡선이다. 이젠 내가 1에 와있는지 -1에 와있는지 자체가 덜 궁금하다. 그것보단 다른 얘기가 하고 싶어.

사람이 술을 마시면 이렇게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