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화를 해서 나를 잘 나타내 줄 팻말을 찾으면 좀 더 개운해 질 줄 알았다. 하지만 나를 남성로맨틱 에이섹슈얼에 에이젠더라고 정체화를 한 후에도 답답함은 여전했다. 나를 좀 더 뚜렷하게 인지하게 될 수 있게 된 건 기뻤지만 거기까지였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랑 어울리면 달라질까 해서 무성애자 카페에 가입했다. 정모에도 몇 번 참여했고 퀴어 퍼레이드도 가 봤다. 그런데 사람들을 만나고 얘기를 할수록 이상하게 점점 더 공허해져갔다. 친한 친구 몇을 붙들고 커밍아웃을 하기도 했지만, 친구들의 어색한 표정을 보며 정작 나도 커밍아웃을 통해 뭘 얻고 싶었던 건지 잘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만 깨달았다. 뭔진 몰라도 내가 원한 게 이건 아닌 것 같은 느낌. 지금은 카페도 정모도 모두 내려놓고 쉬고 있다.

퀴어 컨텐츠를 많이 접하면서 느낀 건, 퀴어도 결국 한 명 한 명의 사람일뿐 그 사람의 queer identity 가 그 사람을 상징하진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이라고 해서 반드시 동성애 차별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며 목소리를 내고 게이 커뮤니티에 속해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 최종적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세상은 ‘성 정체성에 관계 없이’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세상이니까, 내성적이고 방에서 따뜻하게 노는 걸 좋아하는 게이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성소수자에 속한다고 해서 ‘성소수자답게’ 삶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부담은 전혀 가질 필요가 없다. 물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더 목소리를 내는 게 ‘나 자신을 건강하게 수용’하는 일이겠지만, 매 순간순간 혁명을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은 오히려 독이다.

무성애자의 존재가 더 많이 알려졌으면 하고 바란다. 동성애자와 트젠을 위한 굿즈팔이 도때기 시장 같았던 퀴어 퍼레이드에 무성애자의 자리가 커졌으면 하고 바란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내가 나 자신을 건강하게 끌어안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퀴어아이의 출연자 중 한 명인 Tan France 가 유투브 채널을 개설했길래 신나게 달려가서 댓글을 달았다. 나를 Asian asexual 으로 소개하며 팬심을 맘껏 드러냈다. 다음 날 일어나보니 내 댓글에 좋아요가 달려있었다. Tan 이 직접! 그걸 보니 마음이 뭉클한 것이, 어쩐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Asexual 이 무엇인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니. 요즘 그닥 연애가 고픈 것도 아니라 무성애에 대한 별다른 생각을 안 하고 살았는데, 그 댓글을 보고 실은 내가 얼마나 위로를 바라왔는지를 깨닫게 됐다. 난 아직 내 감정을 제대로 바라보지도 못하는 구나. 그런 깨달음이 있었다.

나의 정체성에 대해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커뮤니티가 참 소중하다. 와타나베 신이치로 감독의 어마무시한 팬이라고 얘기했을 때 내 성향을 바로 이해해주는 사람들, asian asexual 이라는 소개를 곧바로 이해해주는 사람들. 무성애든 애니메이션 취미든 내가(내 세대가) 나서서 존재를 알리고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생길 텐데, 그런 건 역시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기에 따뜻한 인터넷 세상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내가 나를 좀 더 아끼고 사랑할 수 있게 되면 따뜻함도 유지하면서 변화를 이끌어 갈 수도 있을까.